출처 : 야후! 심리웹진 구냥( http://kr.ring.yahoo.com/WEBZINE/main.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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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최준이란 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역시 출저는 동일합니다.

최준(1884-1970, 호는 문파(汶坡).)
인간성
최준 가문의 최대 "가훈"은 "중용"이었음: "치우치지 말고, 성급하지 말고, 욕심 내지 않는다. 어느 것이든 완벽한 한 가지는 없으며, 좌우에 치우침이 없이 의롭게 산다." 이런 중용의 덕을 뼈에 심기 위한 듯, 최준의 조부의 호는 "대우(大愚: 크게 어리석음)"였으며, 친부의 호는 둔차(屯次: 재주가 둔해 으뜸가지 못함)였음.

중용과 의로움, 이는 최씨 가문의 재복을 3세기 동안 유지시켜준 가장 큰 원동력이었으며, 최준 일생의 좌우명이었음.

극도로 안정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었으며, 과감한 결정이나 의사 표현을 하지 못했음. 자신의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사업을 할 때면 다른 이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편이었으며, 스스로 완전히 적극적인 독립 운동에 나서지 않았음.

전통적으로 의로운 일에 강한 집착을 보였음. 가문이 화를 입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제에 협조하지도 않았으며(모호한 대답으로 완곡한 거부의 뜻을 표하는데 능했음), 평생 민족 교육을 위한 활동에 게을리하지 않았음.

권력이나 재물욕이 없으며 겸손했음.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자신이 설립한 교육 기관의 수장이 됐음에도 이내 일선에서 물러남.

사실들
최준은 경주 최 부잣집의 조선조 마지막 후손. 경주 최 부잣집은1600년대 초 임진왜란 당시의 명장 최진립 장군의 후손들로 수백만 평의 논밭을 가진 엄청난 부호였음. 조선조 수많은 전쟁과 당쟁, 민란을 거치면서도 이들이 쌓은 부와 지위가 300년간 10대를 이어 왔다는 점은 특이할만한 사실. 

1884년 태어난 최준은 어린 시절 신식 공부를 통해 개화기 지식인이 되고자 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이른 나이에 결혼해 가업을 잇는다. 

독립 운동가 안희제와 박상진에게 크게 감화, 독립을 위해 교육 사업과 물산 장려 사업에 뛰어 들기로 결심. 1919년 백산 상회를 설립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당시 백산 상회는 부산 내 최대 사업체 중 하나였으며, 이익금의 대부분을 독립 운동 자금으로 환원함. 

지식인들의 권유로 당시 악화 일로에 있던 조선 문화재 유출을 막고자 경주 고적 보존회를 창립함. 경주 고적 보존회는 주변에 도굴된 모든 조선의 문화재를 사들여 굉장한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경주 박물관의 전신이 됨. 

일제의 방해 공작 및 지나친 독립 자금 조달로 백산 상회가 파산함. 사업이 어려운 와중에도 최준은 가문의 전통에 따라 흉년에 기아자 구휼을 위한 자선금을 내놓음. 

사업의 파산으로 300년째 내려오던 만석꾼의 지위는 땅에 떨어지고 최준의 가문은 역사상 유례 없던 빚 독촉에 시달림. 이후 최씨 가문의 재산권을 쥐게 된 식산 은행의 총재로부터 집요한 친일 요청을 받음. 일제는 최준의 빚을 일부 탕감해 주고 공직을 제안하는 등, 당시 민중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최씨 가문을 친일 계열로 흡수하려 했음. 최준은 이 모든 유혹을 뿌리침. (그러나 결국 최준의 동생 최윤이 대신 중추원 참의 자리를 수락함. 최윤은 멸문지화를 막기 위해 역적이 되기로 자청한 것으로 알려짐.) 

광복 후, 평생의 숙원이었던 교육 사업에 전력을 다함. 최준의 노력으로 대구 대학이 설립됐고, (대구 대학은 현재 영남 대학교의 전신) 이곳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신라 때부터 내려온 국보급 도서들을 기증함. (최준이 기증한 도서는 현재 영남 대학교 중앙 도서관에 그의 호를 딴 문파 문고로 보존되고 있음.)  

죽음, 그 후
1970년 여든 일곱의 나이로 별세. 불행히도 그의 당시 저택에 불이나 문화재 급 자산이 훼손됨. (당시 최부잣집 저택은 이미 국가에 기증된 상태였음.)

그와 그의 조상들이 쌓은 부는 모두 국가를 위해 쓰여졌으며, 후손들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짐.

2005년 경주시는 5억원의 예산을 들여 최부잣집 종택 사랑채를 원형 복원하기로 결정, "높은 도덕성으로 존경 받아온 최부잣집 유적지 일대를 복원해 관광명소로 활용하는 한편 고위층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일깨우는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힘. 


이상입니다... 다음편에서 뵙죠...;;;

Posted by Young79